
[중소기업연합뉴스] 윤병운 칼럼니스트 =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제도 개편은 투자자 보호와 시장 신뢰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필요한 조치다. 실제로 2026년 7월 1일부터 코스피 시가총액 기준은 300억 원, 코스닥은 200억 원으로 높아지고, 2027년 1월 1일부터는 각각 500억 원과 300억 원으로 추가 상향된다. 주가 1,000원 미만 종목도 새롭게 상장폐지 관리 대상에 포함되며, 반복적·과도한 주식병합이나 감자를 통한 형식적 회피도 제한된다.
그러나 정책의 현실적인 한계도 분명하다. 정부는 부실기업을 빠르게 가려내는 기준은 만들었지만,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어떤 절차와 방법으로 정상화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지원 체계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상장폐지 규제’와 함께 ‘상장기업 구조조정 지원체계’가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 필자는 기업구조조정, 전문가와 M&A 전문가의 관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무적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어떻게 상장을 유지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기업가치를 회복할 것인가"로
상장폐지 제도 개편, 규제가 아니라 시장의 신호다
최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내놓은 상장폐지 제도 개편안을 두고 시장의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동전주를 솎아내는 조치라고 부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혁신기업까지 위축시키는 규제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부실기업의 회생 현장과 M&A 딜 테이블을 오가며 지켜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번 개편은 단순한 규제 강화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이 보내는 신호의 문제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시가총액 기준의 상향, 동전주 요건의 신설, 공시위반과 자본잠식 기준의 강화, 이 모든 조치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로 모아진다. 더 이상 상장사라는 지위 자체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적지 않은 한계기업들이 실적 개선 대신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 최대주주 변경, 테마성 신사업 발표를 반복하며 상장 유지라는 목표 자체를 마치 하나의 경영전략처럼 취급해왔다. 이번 제도 개편은 그런 관행에 대한 시장의 마지막 경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동전주는 병이 아니라 증상이다
현장에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주가를 어떻게 방어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 자체가 이미 잘못된 진단에서 출발하고 있다. 주가가 1,000원 아래로 붕괴하는 현상은 병이 아니라 증상일 뿐이다. 그 이면에는 대개 여러 문제가 오랜 시간에 걸쳐 겹겹이 쌓여 있다. 수년간 이어진 영업손실과 현금흐름의 악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금융부채와 불안정한 만기 구조, 상환보다는 연명을 위해 반복적으로 발행되는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경영권 안정보다는 매각 차익을 노린 잦은 최대주주 교체, 본업과는 무관한 신사업 발표로 주가를 일시적으로 띄우려는 관행,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누적되면서 무너진 공시 신뢰도까지, 이 모든 것이 얽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기업이 위기에 몰리면 가장 먼저 꺼내드는 카드가 주식병합이나 감자 후 유상증자다. 단기적으로는 상장폐지 시계를 늦출 수 있을지 모르나, 영업이익과 현금창출력이라는 근본적인 변수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같은 위기는 반드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실제로 구조조정 자문 현장에서는 감자와 병합을 두세 차례 반복한 뒤에야 비로소 본질적인 처방을 찾아 나서는 기업을 드물지 않게 마주한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협상력도, 시간도, 남아 있는 자산도 크게 줄어든 뒤인 경우가 많다. 결국 주가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기업가치가 만들어낸 결과값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업은, 어떤 제도 아래에서도 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상장폐지 강화 정책의 기대 효과와 숨은 위험
물론 이번 정책의 방향성 자체는 타당한 부분이 많다. 부실기업이 시장에 장기간 잔류하면서 발생하는 투자자 피해를 줄일 수 있고, 자본이 성장기업 쪽으로 재배분되면서 시장 전체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으며, 허위공시나 단기적인 주가부양 시도와 같은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억지력도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놓치기 쉬운 위험도 분명히 존재한다. 아직 매출이 본격화되지 않은 바이오기업이나 플랫폼기업, 콘텐츠기업 등은 일시적인 시가총액 하락만으로도 퇴출 압박을 받을 수 있고,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커지면 투매가 발생하면서 이것이 다시 시가총액 하락으로 이어지는 자기실현적인 악순환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즉 이번 개편은 퇴출의 기준을 정교하게 다듬은 것이지, 회생의 경로를 설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짚어야 한다. 그 회생의 설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온전히 기업과 자문사의 몫으로 남아 있다.
회생의 출발점 — 정밀 진단과 현금흐름 분석
그렇다면 상장폐지 위험에 놓인 기업은 실제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주가를 관리하는 방식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사업구조와 재무구조를 동시에 재설계해야 하며,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하는 절차는 대략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른다. 먼저 정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단순히 주가와 시가총액만 볼 것이 아니라 자본잠식률과 공시위반 이력, 차입금의 만기 스케줄, 실제로 활용 가능한 현금, 최대주주의 지분구조까지 한 장의 지도로 그려내야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13주 단위의 현금흐름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언제 현금이 마르는지를 주 단위로 예측하지 못하는 기업은 적자 규모와 무관하게 가장 위험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손익계산서보다 현금흐름표가 실제로는 생존을 결정짓는 경우가 훨씬 많다.
사업 재편과 자산 매각, 채무구조 개선을 통한 체질 개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사업 포트폴리오의 재편이 필요하다. 현금을 벌어들이는 사업과 갉아먹는 사업을 냉정하게 구분해서,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사업에는 자원을 집중하고 만성적인 적자를 기록하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 대상으로 못박아야 한다. 이와 함께 자산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도 병행되어야 한다. 유휴 부동산이나 비핵심 자회사, 사용하지 않는 설비를 매각해 운전자금을 마련하되, 이는 헐값에 급하게 처분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가치를 지킬 수 있는 전략적인 매각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채무구조의 개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유상증자만으로 시간을 버는 방식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으며, 금융기관과의 만기연장, 금리인하, 출자전환, 채무재조정을 함께 병행해야 한다. 채무조정 없이 투자유치만 밀어붙이면 신규로 들어온 자금이 곧바로 기존 부채 상환에 흡수되어버리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전략적 투자유치와 M&A, 법적 구조조정 제도의 조기 활용
이러한 재무적 처방과 더불어 전략적 투자자, 즉 SI나 FI의 유치도 중요한 축이 된다. 기업이 가진 기술과 브랜드, 고객, 특허, 생산설비 등 핵심 자산을 중심으로 투자자를 설득해야 하며, 이때 투자자를 단순한 자금 제공자가 아니라 기업가치를 함께 끌어올리는 파트너로 접근할 때 성사율이 훨씬 높아진다. 나아가 M&A의 추진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대상이다. 많은 경영진이 M&A를 최후의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실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다. 기업가치가 아직 남아 있을 때 전략적 인수자를 찾는 것이 협상력과 매각가를 동시에 지키는 길이며, 자산이 이미 소진된 뒤에 추진하는 M&A는 사실상 헐값 매각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기업회생절차나 ARS, Pre-ARS, 워크아웃과 같은 법적 구조조정 제도를 조기에 검토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제도들은 최후의 카드가 아니라 조기에 검토해야 할 하나의 선택지로 접근해야 하며, 적절한 시기에 활용하면 영업을 유지하면서도 채무조정과 기업가치 보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핵심은 순서 그 자체에 있다. 진단과 현금흐름 파악이라는 기초 작업 없이 곧바로 투자유치나 M&A로 건너뛰는 기업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해외 선진국은 이미 '퇴출'이 아니라 '회복'을 설계한다
이러한 회복 중심의 접근은 이미 해외 선진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Chapter 11 제도는 기업이 정상적인 영업을 유지한 채로 채무를 조정하고 신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법적인 틀을 제공하고 있으며, 일본은 산업재생기구와 민간 구조조정 전문가를 결합해 기업의 사업재편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왔다. 두 사례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부실기업을 무조건 퇴출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회생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뒤 그에 맞는 회복 경로를 함께 설계한다는 점이다. 한국 자본시장이 퇴출 기준을 정교하게 다듬어가고 있는 지금, 반드시 함께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 바로 이러한 회복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함께 채워야 할 회복 인프라의 빈틈
퇴출 기준만으로는 투자자 보호와 산업 경쟁력 유지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 상장기업을 위한 조기경보 시스템의 구축, 상장기업 구조조정 지원센터의 설립, 구조조정 전문 펀드의 활성화, M&A 매칭 플랫폼의 운영, ARS와 Pre-ARS 제도의 확대 적용, 그리고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한 조건부 개선기간 부여와 같은 제도적 보완이 함께 병행될 필요가 있다. 퇴출의 기준과 회복의 경로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정부가 말하는 다산다사형 시장구조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남는 기업은 버티는 기업이 아니라 다시 설계하는 기업이다
결국 동전주 문제의 해법은 주식병합도, 반복적인 유상증자도 아니다. 현금흐름의 개선과 사업재편, 채무조정, 전략적 투자유치, 그리고 M&A까지 이 모든 요소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실행하는 통합적인 구조조정만이 기업가치를 근본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다. 정부가 퇴출의 기준을 세웠다면 이제는 기업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어떻게 상장을 유지할 것인가는 유효한 질문이 될 수 없다. 이제는 어떻게 기업가치를 회복하여 시장과 투자자의 신뢰를 다시 얻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상장폐지 기준이 강화되는 시대에 살아남는 기업은 그저 버티는 기업이 아니다. 스스로의 사업과 재무구조를 다시 설계할 용기를 가진 기업만이, 새로워진 자본시장에서 다음 라운드의 승자가 될 것이다.
필자는 한국기업회생협회 회장으로써 기업구조조정 및 M&A 전문가로서 다수의 상장기업 회생·매각 자문을 수행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