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메마른 일상에 따뜻한 '시(詩)그널'을 켭니다. 행간에 담긴 마음의 떨림 속에서 바쁜 일상에 잊히기 쉬운 '인권과 존엄'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인권온에어가 전하는 詩 한 편이 당신의 오늘에 다정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떠난 뒤에 더 선명해지는 자리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이상하게도 모습보다 기척이 오래 남는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웃음소리가 멎고 나면 방은 더 조용해지고, 아무것도 없는 자리를 자꾸 바라보게 된다. 있을 때는 미처 몰랐던 한 존재의 크기를 빈자리 앞에서 비로소 알아차리게 하는 시 한 편이 있습니다.
아기
어제는
작은 웃음이
온 집을
꽉 채우더니
오늘은
그 빈자리가
온 집을
가득 채운다
아기가 있던 곳마다
자꾸
아기가 보인다.
_김미자
이 시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 아기가 있었고, 지금은 없다. 그런데 시인은 그 단순한 전후를 “꽉 채우더니”와 “가득 채운다”라는 닮은 표현으로 이어 놓는다. 어제는 웃음이 집을 채웠고, 오늘은 빈자리가 같은 집을 채운다. 채우는 것이 사라졌는데 오히려 집은 더 가득해졌다.
그 역설이 「아기」의 마음을 만든다. 누군가 곁에 있을 때 우리는 그 존재가 차지하는 공간을 잘 모른다. 웃음소리와 발걸음, 눈길이 너무 자연스러워 그것이 얼마나 많은 자리를 채우고 있는지 헤아리지 않는다. 그러다 사람이 떠난 뒤, 조용해진 공간 속에서 비로소 그가 있던 자리의 크기를 발견한다.
“아기가 있던 곳마다 / 자꾸 / 아기가 보인다”는 마지막 세 행은 그래서 오래 남는다. 실제로 보이는 것은 없는데 마음에는 더 또렷하게 보인다. 방 한쪽에도, 앉았던 자리에도, 손이 닿았던 곳에도 기억이 남아 있다. 사람은 떠난 뒤에도 자신이 머물렀던 공간을 한동안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의 가치를 종종 큰 역할이나 눈에 띄는 성취로 판단한다. 하지만 한 존재가 우리 삶에 남기는 것은 반드시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웃음 하나가 집 안의 공기를 바꾸고, 잠시 머문 사람이 떠난 뒤의 적막까지 달라지게 한다.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어쩌면 그가 무엇을 했는가보다 그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김미자 시인은 아기의 빈자리를 슬픔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보고 싶다”거나 “그립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다만 아기가 있던 곳마다 자꾸 아기가 보인다고 적는다. 설명하지 않아 더 깊게 들어오는 그 한마디 속에서 독자는 저마다 떠난 뒤 더 선명해졌던 한 사람의 자리를 떠올리게 된다.
어떤 사람은 떠난 뒤에야 얼마나 많은 공간을 채우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목소리가 사라진 방에서 목소리를 듣고, 비어 있는 의자에서 얼굴을 떠올린다. 빈자리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 한 사람의 기억으로 가장 가득 찬 자리인지도 모른다.
시인 소개

김미자 시인은 일상의 짧은 순간에서 가족과 그리움, 사람 사이의 온기를 길어 올리는 시인이다. 《월간문학》으로 등단해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6년 제2회 경북문경연가 디카시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그리움은 늘 바쁘다》 등을 펴냈으며 시·수필·아동문학과 시낭송을 꾸준히 공부하며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